글로벌 수요 회복과 친환경 선박 전환이 이끄는 산업 호황
세계 조선업계는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동안 주춤했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조선소는 전통적인 기술력과 대규모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LNG선,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ESG 경영 기조가 강화됨에 따라 친환경 선박, 즉 이중연료 추진선박, 메탄올·암모니아 추진 선박 등 차세대 선박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곧 고도화된 설계와 기술력이 요구되는 분야로, 국내 조선사들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등 빅 3 조선소는 세계 시장의 약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각 사는 친환경·스마트 조선소로의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 중이다. 예컨대 삼성중공업은 자율운항 기술 개발과 함께 LNG운반선 전문화를 통해 고수익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 역시 'K-조선 재도약 전략'을 통해 기술개발, 인력양성, 금융지원 등 다방면에서 산업 기반 강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숙련된 용접사와 기계 기술자 수급이 어려워 생산성에 제약이 발생하며, 인건비 상승과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조선소들은 자동화 설비 확충과 스마트 팩토리 도입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기술 혁신과 스마트 조선소, 미래 경쟁력의 핵심
디지털 전환은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인공지능(AI), Io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스마트 조선소 구축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조선업계도 이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조선소 4.0’을 선언하며 인공지능 기반의 설계 자동화, 실시간 생산 모니터링, 디지털 트윈 기반의 가상 시운전 등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 중이다. 이를 통해 선박 건조 기간을 단축하고 품질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수익성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국방 및 상선 분야를 융합한 기술 다각화 전략을 추진 중이며, 특수 선박 설계 및 건조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상용 선박 기술로 전환하고 있다. 또한 AI 기반의 엔진 이상 탐지 시스템, 스마트 유지보수 설루션 등은 선주들에게 큰 매력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기술 경쟁력은 글로벌 선주들로부터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중요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조선소의 기술 혁신은 단지 개별 기업의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의 고도화로 이어지며, 수많은 부품·기자재 업체에도 파급 효과를 미친다. 다만, 이러한 디지털 전환은 초기 투자 비용이 높고,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중소 조선업체나 하청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도태될 위험도 존재한다. 이에 정부는 ‘스마트 선박 R&D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기술 생태계 전반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인력난과 지역 경제의 이중 과제
국내 조선소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또 다른 관건은 바로 숙련 인력 확보이다. 조선업은 전통적으로 노동 집약적 산업이지만, 최근 청년층의 기피 직종으로 인식되면서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거제, 울산, 목포 등 주요 조선소 밀집 지역에서는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겹치면서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조선업체들은 외국인 근로자 채용 확대, 기술인력 양성 프로그램 신설, 산학협력 프로젝트 등 다양한 해결책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지역 대학들과 협약을 맺고 조선 특화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삼성중공업 역시 거제시와 연계한 조선업 훈련센터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단기적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조선업의 이미지 제고와 직무 전문성 인정, 임금 체계 개선 등의 장기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조선업의 지역 편중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정 지역에 산업 기반이 집중되면서 해당 지역 경기 변동성이 국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업의 지역 분산화, 조선 기자재 산업의 전국적 육성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조선산업 지역상생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조선산업 도시를 중심으로 문화·복지·주거 인프라를 확충하여 젊은 인재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조선소 산업은 기술력, 수주 경쟁력, 정부 지원 등 여러 긍정적 요소를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이 크지만, 인력난과 지역 편중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선박 기술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